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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사회적 문제] 자살사망 급증하는데 원인 분석 ‘뒷전’
2012-06-28 08:04:23 read : 10946
선진국들은 자살사망자 심리적 부검 … 자살위험요인 분석, 대책 수립
우리나라는 시범사업만 진행 … 경제·직장문제 스트레스 초고위험군 15%
지난 25일 저녁 10시50분쯤 인천 남구 숭의동 주택에서 여 모(69)씨와 아내 김 모(68)씨가 숨져 있는 것을 이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 김 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여씨는 부엌에서 목을 매 숨져 있었으며, 김씨는 거실에서 눕혀진 채 숨져 있었다.
여씨는 유서 2장과 시신기증 서약서 등을 남겼다. 경찰은 이들 노부부가 생활고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부부의 통장에는 잔고가 3000원밖에 없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하는 한편,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중이다.
여씨 부부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자살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특별한 행동인 만큼,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학계에서는 자살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자살이라는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자살현상을 하나의 사회병리로 봤다. 즉, 사회적 통합의 정도가 약하고 개인과 사회가 결속하지 못하면 자살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적 상태로 파악하는 시각이 있다. 대표적인 심리상태로는 우울증이 있는데, 이것이 무기력감과 절망감으로 이어져 자살로 귀결된다고 본다.
뇌의 신경전달물질 대사가 이상해지면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생물학적 이해도 있다.
우울증이나 정신분열병 등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할 위험성이 크다는 것.
세 가지 견해가 자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구체적인 현실에서 일어나는 자살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매년 1만5000여명이 자살하는 우리나라 여건에서는 더 그렇다. 과연 자살의 실질적 원인이 무엇이고 이들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핀란드 1980년대 후반에 자살사망자 전체 심리적 부검 = 미국과 영국, 스웨덴,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자살사망자에 대해 심리적 부검을 하고 있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사망자에 대해 수집된 포괄적인 정보를 가지고 자살원인에 대해 연구하는 방법이다. 즉, 어떤 사람이 자살했을 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나 유서 등 활용 가능한 자료를 수집해 왜 그 사람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시초는 1934년부터 1940년까지 미국 뉴욕 경찰 93명이 연속적으로 자살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이 원인을 규명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57년 미국 워싱턴대학의 엘리 로빈스가 1년 동안 134건의 자살 사건에 대해 체계적으로 조사한 것이 현대적 의미의 심리적 부검 연구 사례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이뤄진 심리적 부검 중 사례수가 가장 많은 것은 핀란드 연구다. 핀란드는 지난 1987년부터 1년 동안 1397건의 자살사망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했다. 1991년에는 부검 분석 결과를 토대로 국가자살예방실행전략을 수립해 실천했다. 핀란드 자살률은 1990년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1996년에는 20% 이상 감소했다.
그 다음으로 미국과 중국이 지난 2001년과 2002년에 각각 753건, 519건의 심리적 부검을 했다. 이 외에도 미국과 중국은 다양한 지역사회와 군대, 교도소에서 수많은 심리적 부검을 실시했다.
◆사회경제적 문제·대인관계·우울증 등이 자살 초래 = 우리나라에서 심리적 부검을 한 것은 지난 2009년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지원금을 받아 경찰청 및 정신보건센터와 연계해 인천과 경기도 수원, 강원도 원주시에서 심리적 부검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2009년 5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됐고, 15건의 자살 의심 사례 중 7건에 대해 심리적 부검을 했다. 시범사업이라고 하지만, 부검 건수가 너무 적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가족 구성원이 자살하면 덮으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
조사 결과, 자살 원인으로, 10∼30대는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가 30%, 친구나 부모, 교사 등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50%를 차지했다. 또 40∼50대 연령층은 정신건강이 30%, 나머지는 사회경제적인 스트레스가 많았다. 노인층은 우울증이 30%, 일반 질환 20%, 사회경제적인 스트레스가 20%로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은 "유가족 사이에 왜 죽은 사람을 한번 더 죽으려고 하느냐는 생각이 강해 심리적 부검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핀란드는 1980년대 후반에 자살률이 높아질 때,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천명을 동원해 자살자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한 후 연령별 직업별 지역별로 자살위험요인을 분석해 예방대책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한편, 자살예방협회가 지난 2010년 9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만 15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의 생명존중 및 자살에 관한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경제문제나 직장, 학교성적 등 사회적 요인의 스트레스 초고위험군이 15%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배우자나 자녀, 부모, 친구 등 대인관계 스트레스 초고위험군도 6%로 적지 않았다.
선상원 기자 w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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