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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혼혈인, "워드가 준 희망이 절망되면 더 큰 좌절"
2006-04-06 08:38:17 read : 7024
"한국의 혼혈인들이 하인스 워드를 통해 희망을 가졌다가 막상 현실에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때 어떤 심정일까요? 더 큰 절망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거무잡잡한 피부색에 큰 눈동자를 지닌 이무진(49) 씨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다른 혼혈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씨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1958년 서울 한남동에서 태어난 이씨는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쏟아지는 차별적 시선을 느껴야했다.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과 싸움도 많이 했고 수차례 이사와 전학을 반복해야 했다.
이씨는 “싸움도 많이 하고, 전학도 많이 했어요. 조금이라도 시선이 차별적이지 않은 곳을 찾아서 이사를 하는 거죠.”라고 회상했다.
고등학생 때인 1979년, 이씨는 부평의 한 혼혈인 단체를 통해 후원자를 만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던 이씨는 1983년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때 이태원 클럽에서 일을 했던 이씨는 이후 미국에서 익힌 목공기술로 인테리어 시공사에 취직해 생계를 이어 오고 있다.
이씨는 사회에 진출하는 혼혈인들 중 상당수는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성실히 살려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이 편안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이씨는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미국에 갈 수도 없고. 나이 들어서 회사에 취업하려고 해도 문제입니다. 10군데 이력서를 넣으면 모두 퇴짜맞는 일이 흔하거든요. 그러다보면 하는 수 없이 밤업소에 나가게 되고요. 성실히 살려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이 편안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요.”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현재 22살 딸과 16살 아들을 둔 가장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사회생활에서 자신을 다르게 보는 시선을 느낀다고 말한다.
“나를 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혼혈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입국해 화제가 되고 있는 하인스 워드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씨는 "한편으론 뿌듯하지만 언론과 사회의 관심이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인스 워드가 젊은 혼혈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것은 좋지만 자칫 희망이 더 큰 절망으로 바뀔 것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하인스 워드가 좋은 계기가 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건 단발성으로 끝날 것 같아요"
이씨는 "한국의 혼혈인들이 그를 통해 희망을 가졌다가 막상 현실에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때 어떤 심정일까요? 더 큰 절망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라고 우려했다.
이씨는 “혼혈인에 대해 차별이 심한 한국사회에서는 하인스 워드와 같이 성공한 혼혈인이 나오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라면서 “일시적인 관심이 아닌 지속적인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했다. 한국에서 혼혈인 자식을 키운 대다수 어머니들은 행상 등을 하며 일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했다는 것이다.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가 존경받는 것 이상으로 한국에서 냉대 받아 온 어머니들도 존경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한국에 사는 혼혈인 어머니는 숱한 차별을 견디며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이씨는 “미국이란 나라는 노력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힘들어요. 예를 들어 파출부 일을 나간 어머니를 혼혈인 자식이 찾아간다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 때문에 어머니는 일을 관둬야 하거든요. 방한칸 얻어 놓고 이사를 가도 혼혈인 자식을 본 주인이 ‘재수없다’며 나가라는 경우가 있어요. 한국에 사는 혼혈인 어머니는 그런 차별을 견디며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이씨는 하인스 워드와 같이 유명한 혼혈인이 더 나온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혼혈인에 대한 차별은 쉽게 사라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한달, 십년, 백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생각을 바꿔나간다면 언젠가는 평등한 사회가 실현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CBS사회부 최경배 기자 ckbes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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