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 남한산성 사택… 은퇴 후 26년간 생활
2009-03-11 08:53:50
그곳에 가면 '청빈한 삶' 가르침 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최근 본보의 경제 대기획 '경제희망의 길, 한국교회가 만든다' 릴레이 인터뷰에서 "사치와 낭비, 무절제한 삶이 글로벌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건강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신앙적 실천과제로 '검소와 청빈의 삶'을 꼽으며 많은 목회자들은 신앙적 롤 모델로 추양(秋陽) 한경직(1902∼2000) 목사를 떠올렸다.
한 목사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긴 메시지는 무엇일까.
현역에서 물러나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6년 동안 머물렀던 남한산성 자락의 한 목사 사택에는 소박하고 검소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난 5일 '한경직 평전'을 집필한 조성기(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와 함께 경기도 광주시 산성리에 위치한 한 목사의 거처를 찾아가 봤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자 60㎡ 정도의 1층 아담한 주택이 보였다. 출입구에는 한 목사가 직접 써 붙인 '한경직 우거처'라는 나무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한 목사님은 자신의 거처를 내집 개념의 '주거처'가 아닌, 남의 집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산다는 뜻의 '우거처'로 여기셨던 거죠.
" 한평생 살면서 개인 명의의 땅과 집을 남기지 않았던 한 목사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사택으로 들어서자 왼쪽으로 응접실이 이어졌다.
짝이 맞지 않는 천소파 7개와 낡은 문갑, 모서리가 닳은 장식장, 빛이 바랜 사진들과 책들, 그리고 응접실 탁자 중앙에 하늘색 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성경 받침대'도 눈에 띄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사택을 관리하고 있는 김용학(58) 집사는 "한 목사님께서 생전에 사용하시던 용품과 가구들 대부분이 그대로 배치돼 있다"면서 "모두 목사님의 손때가 묻어 있는 물건들"이라고 설명했다.
침실에는 직사각형의 낮고 좁은 싱글 침대와 맞은 편으로 이불장을 겸한 한칸짜리 옷장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조 교수가 낡은 옷장을 가리키며 한 목사의 일화 한토막을 꺼냈다.
"한 목사님이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하셨을 때였어요.
시상식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는 당일에 목사님이 이 방에서 좀처럼 나오시지 않는 거예요.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참다 못해 방에 들어가보니 목사님이 정장 상의는 없이 바지와 와이셔츠만 입고 우물쭈물 서 계셨어요.
옷장에는 입고 갈 만한 마땅한 웃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또 누군가에게 거저 선물한 거였겠죠, 뭐…." 그 옷장 앞에서 입고 갈 옷이 없어 민망한 표정으로 서 있었을 백발의 목사를 떠올리자 마음이 숙연해졌다.
응접실 반대편에는 주방과 함께 한 목사를 돕던 영양사와 간병인이 머물던 방이 있었다.
한 목사는 매일 저녁식사를 마치면 이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1시간 가까이 꼬박꼬박 드렸다고 한다.
조 교수를 따라 사택 맞은편 작은 소나무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페인트 칠이 듬성듬성 벗겨진 콘크리트로 만든 십자가 앞에 직경 2m 정도 되는 나지막한 바위가 보였다.
한 목사가 새벽마다 올라가 기도했던 일명 '기도 바위'다.
조 교수는 그 곳에서 한 목사가 질곡의 세월을 겪으며 생활 신조로 삼았다던 '성경 말씀'을 꺼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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