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년십만원 2015-06-26 17:53:03 촌년 10만원 -------------- 여자 홀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하며 판사 아들을 키워낸 노모는 밥을 한 끼 굶어도 배가 부른 것 같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 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오뉴월 폭염의 힘든 농사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나는 등 세상을 다 얻은 듯 해 남부러울 게 없었다. 이런 노모가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거지를 이고 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의 아들 집에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했으나 이날따라 아들만큼이나 귀하고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잣집 딸을 며느리로 둔 덕택에, 신기하기만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 없어 집안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됐다. 그 물건은 바로 가계부다. 부잣집 딸이라 가계부를 쓰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며느리가 쓰고 있는 가계부를 보고 감격을 해 그 안을 들여다보니 각종 세금이며 부식비, 의류비 등 촘촘히 써내려간 며느리의 살림살이에 또 한 번 감격했다. 그런데 조목조목 나열한 지출 내용 가운데 어디에 썼는지 모를 '촌년10만원' 이란 항목에 눈이 머물렀다. 무엇을 샀길래 이렇게 쓰여 있나 궁금증이 생겼으나 1년 12달 한 달도 빼놓지 않고 같은 날짜에 지출한 돈이 바로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준 날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촌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아들 가족에게 주려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지고 온 한해 가을 거지를 주섬주섬 다시 싸서 마치 죄인 된 기분으로 도망치듯 아들의 집을 나와 시골길에 올랐다. 가슴이 터질듯 한 기분과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통을 속으로 삭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금지옥엽 판사아들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 왜 안주무시고 그냥 가셨어요?" 라는 아들의 말에는 빨리 귀향길에 오른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한가득 배어 있었다. 노모는 가슴에 품었던 폭탄을 터트리듯 "아니 왜! 촌년이 거기 어디서 자-아." 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모는 "무슨 말? 나보고 묻지 말고 너의 방 책꽂이에 있는 가계부한테 물어봐라" 며 수화기를 내팽겨치듯 끊어 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 보고 어머니 역정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자니 판사 집에서 큰 소리 난다는 소문이 날거고 패자니 폭력이라 판사의 양심에 안되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 마련에는 몇날 며칠의 무척이나 힘든 인내심이 요구 됐다. 그런 어느날 바쁘단 핑계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뒤로 미루던 남편이 처갓집을 다녀오자고 하자아내는 신바람이 나서 선물 보따리며 온갖 채비를 다한 가운데 친정 나들이 길 내내 입가에 즐거운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처갓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모두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마당에 서 있자 아니 우리 판사 사위 왜 안 들어오는가?" 장모가 말하며 나오자 사위가 "촌년 아들이 왔습니다." 라고 정중하게 인사하니 어리둥절해서 그 자리에 돌하루방처럼 굳은 채 서 있있는 장모에게 "촌년 아들이 감히 이런 부잣집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라는 말을 하고 차를 돌려 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서는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비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다음 달부터 촌년 10만원은 온데간데 없고 시어머니의 용돈 50만원이란 항목이 며느리의 가계부에 자리했다. ~~~~~중략~~~~~ 우리들의 어머니는 항상 눈물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멀리 통학하는 큰 아들 아침과 도시락을 싸시는 것을 보고 잠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촌티 나게 여물 냄새나는 옷을 입고 새벽차림에 어둠을 설거지 하시던 어머니의 그리움, 그 새벽들을 부추기시던 손길에 우리들의 오늘이 무르익었습니다. 여물 솥에 군불 때시던 그 손길에 오늘의 우리의 삶이 팔팔 끓고 있습니다. 오늘이 어렵고 시리고 아파도 어머니의 새벽 설거지 그 손길을 기억하고 오늘을 차려 주신 정성에 참음으로, 견딤으로 세워 나가자구요. 아마도 새벽의 어둠이 저녁의 밤이 되도록 힘들게 뛰고 나면 환하던 낮처럼 모든 일들이 풀리고 풀려 가로막던 동장군의 얼음강 너머로 봄 사랑이 나아오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봄만큼 큰 선물이 어디 있던가요? 아마도 올해 봄은 그처럼 빨리 올 것입니다. 바로 내일 아침 문을 열 때 우리 앞에 서 있어 미소로 인사하겠죠? 화사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미소로 오늘을 감싸 안고, 가족도 감싸 안아, 어머니처럼 새벽경영을 인내경영으로, 세상을 감싸 안는 포옹경영으로 거듭나길 기원합니다. 글쓴이 : 수지맞고싶은자 admin